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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씨 이야기] 폭염에도 역대 최대 방문…비 갠 뒤 무지개 같았던 '정동진독립영화제'

'영화를 좋아하는 김경의 화·네필 관련 이모저모 이야기'

 

폭염 속에서도 사흘간 열린 '제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방문객이 약 1만5000명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지난 1999년 첫 개최 이후 역대 최다 수치인데요.  

 

 

6일 강릉시와 강릉씨네마떼끄에 따르면 이달 2~4일 3일간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26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작 공모에는 단편영화 953편과 장편영화 77편, 총 1030편의 작품이 접수됐는데요. 이 역시 역대 최다 출품 수라고 합니다. 집행위원회는 이 가운데 22편의 단편영화와 2편의 장편영화, 총 24편의 작품을 최종 선정해 영화제 스크린을 채웠는데요.

 
저는 전국 영화제를 찾아간 지도 얼마 안 될뿐더러, 몇 군데 되지도 않지만 개인적으로 정동진독립영화제를 매우 좋아합니다. 여름이라면 정말 치는 떠는 데도, 매년 8월 초만 되면 정동진 역에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을 정도로요. 

 

보통의 영화제에서는 치열한 티켓팅에서 실패할 상황까지 고려해 2안, 3안의 시간표를 짜야 하지만 이 영화제는 돗자리 하나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큰 스크린 덕분에 들어가기만 한다면 모든 상영작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또 같이 온 이들과 떠들거나 도중에 잠들어도 됩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고 중간에 손뼉를 치거나 크게 깔깔 웃을 수도 있고요. 더불어 제가 가 본 그 어떤 간이 화장실 중에서 최고의 위생을 자랑합니다. 

 

보통의 영화관에서 볼 수 없는 독립영화의 매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이 영화제의 큰 매력인데요. 저는 이틀만 이 영화제에 있을 수 있어 24편의 작품 중 18개 작품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18편 중 가운데 제가 추천하는 작품은 임유라 감독의 '메아리'와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 김수웅·이지윤 감독의 '감자의 모양', 유이수 감독의 '명태', 남궁선 감독의 '힘을 낼 시간'인데요.

 

특히 딸에 대하여는 오는 9월4일 개봉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김혜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동성 연인과 함께 집에 들어 온 딸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엄마'가 요양원에서 외로이 늙어가는 할머니를 돌보는 내용인데요.

 

수많은 봉사활동과 후원으로 한평생을 헌신했지만, 결국 삶의 끝에 아무도 남지 않은 할머니를 보며 자신의 딸 '그린'의 미래를 그리는 엄마의 복잡한 마음을 표현했는데요. 그러나 기존 세대들이 생각하는 가족상과는 다른 가족에 대한 미래상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줍니다. 

 

'힘을 낼 시간'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보려고 했지만, 티켓팅에 실패해 보지 못했는데요. 아이돌이라는 꿈 하나만 좇다가 결국 해체에 이른 청년 세 명이 누구의 도움 없이 제주도 여행을 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아냈습니다.

 

날 것 그대로의 연출과 각본, 연기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요. 그것마저도 그들의 아슬아슬했지만, 결국 다시 빛날 청춘을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입니다. 또 정동진 밤하늘과 선선하게 부는 바닷바람 아래서 봐서 더 좋았고요.

 

 

정동진독립영화제에는 국내 영화제에서 유일하게 관객들의 손으로 받을 수 있는 '땡그랑 동전상'이 있는데요. 영화를 본 관객이 마음에 드는 작품에 동전이나 지폐로 투표하는 이 상에는 올해 7607개의 화폐(약 140만 원)가 모였다고 합니다. 

 

올해 이 상의 영예를 안은 감독은 이미랑 감독(딸에 대하여), 남궁연이 감독(꿈은 이루어진다), 임지선 감독(헨젤: 두 개의 교복치마)였습니다.

 

역대 최다 규모의 관객을 모은 올해 정동진독립영화제지만, 이런 성과에도 집행위원회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요. 무대에 수시로 올라 각종 공지사항과 안내를 진행한 김진유 감독은 첫날 영화제에 방문한 관계자들을 소개하던 중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관계자들도 참석해 줬다"고 언급했습니다.

 

올해 영진위 지원금은 영화발전기금과 사업 통합과 같은 이유 탓에 지원 대상을 기존 41곳에서 10곳으로 줄였는데요. 정부 예산이 늘거나 줄어든 적은 있어도 '전액 삭감'의 경우는 처음인 만큼, 영화제 대다수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이를 피해 가지 못하고 올해 영진위 예산을 아예 받지 못한 채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제 입구에서 판매 중인 버드나무 브루어리 맥주와 테라로사 커피를 많이 드셔달라. 전액 영화제에 후원되기 때문에 관객분들이 구매하실수록 영화제를 살릴 수 있다"는 멘트도 영화 중간중간에 여러 번 언급됐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개최였지만, 흥행을 암시하듯 영화제 첫날에 어여쁜 무지개가 선명하게 비추면서 관객들을 설레게 했는데요.

 

내년에는 부디 여유 있는 예산을 통해 보다 다채로운 '제27회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관객을 반겼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슈에디코 김수경 기자/